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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건, 사고

[미제사건] 박꽃수레 실종, 김영돈 변사 사건... 둘의 중심에 이성재

박꽃수레(이하 박 씨, 일본통명은 '사토'라는 성씨를 사용.)는 일본에서 일본인 남편 '사토' 씨와 재혼을 하였으나 사토가 의문사를 당하고, 이어 박 씨도 실종된 사건이다. 


박꽃수레는 박상식의 딸로, 박상식은 일본에 오가면서 수출입상을 하였는데 그 인연으로 딸 박꽃수레도 일본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박꽃수레는 졸업 후 다시 일본에서 애견미용을 배운다고 해서 갔지만, 정작 하던 일은 한일국제결혼을 중매를 통역해주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족이 박꽃수레를 만났던 것은 박 씨 외삼촌의 장례식장이었으며, 2016년 6월 29일 일본에 출국한 기록을 마지막으로 박꽃수레는 실종되었다. 


박 씨가 마지막에 살던 집은 후쿠시마의 아라이촌이었으며, 현재 빈집에는 풀숲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거기다 박 씨가 실종되기 전에, 상술했듯 박 씨의 마지막 남편이었던 사토 씨 역시 의문사 당했다는 것이다. 


사토의 친구라는 사토 요이치(또 다른 사토 씨)에 따르면, 풀을 벤 다음 태우려고 하다가 그 불이 옮겨 붙어서 사망했다는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많았다고 증언한다. 아무튼 사토가 사망한 시점에서는 박-사토 부부는 아직 자식이 없었으므로 마지막 박 씨가 살던 사토의 자택과 토지 일대가 박 씨에게 상속이 될 텐데, 사토의 의문사 직후 박 씨가 실종되었다는 건 더 미심쩍다.


박꽃수레 실종 사건


초기 수사에는 경시청에서 주권침해 등의 명목으로 공조를 거절했다. 


왜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는지는 불명이나, 아마 그쪽에서 비공개 수사를 견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때문에 가족도 현지 경시청의 '기다리라'라는 말만 듣고 이후의 답변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것이 알고싶다 팀에 제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취재진과 박상식이 현지 경찰, 즉 후쿠시마의 지방 경시청을 취재했을때 관계자의 취재는 거절되는 대신 취재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박상식만 현지 경시청과 상담을 하고 왔다고 한다. 


경시청이 비협조적이다보니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현지 지방신문 기자와 기자 측의 신변보호요청을 조건으로 인터뷰를 하게 된다. 


이 사건을 관심있게 취재한 현지 지방지 기자들에서의 소문은 이미 살해당해서 유기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며, 정황 근거가 실종 당시 집에 에어컨이 계속 켜져 있었으며 귀중품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라는 것이다. 현지 경시청 수사에서는 이미 2016년 7월경에 살해당했을것이라고 잠정했다는 언질도 있었다.


하술할 김영돈 사건과 박꽃수레 사건에 대한 후쿠시마 경시청의 수사가 더뎌진 건 하필 후쿠시마현 시모고마치에 변사체 발견이 있었고 시모고마치 변사체의 살인범(호시 히사히로?)이 잡힌 사건이 있기 때문에, 시모고마치 변사체 사건 수사 때문에 수사력이 분산된 이유도 일조한다는 견해도  


2016년 7월 6일, 박씨의 거주지 인근의 고속도로 나들목 CCTV를 조회한 결과, 이때 의문의 남성이 차를 몰고 있었고, 박씨는 그 차에 동승중이었다. 함께 동승한 남성은 이성재였다.


박꽃수레의 오빠인 박달나무(진짜 이름이 저렇다)는 평소 <그것이 알고싶다> 팬이었으며, 이번 사건도 그 프로그램에서 다룬 실종사건들과 패턴이 뭔가 비슷하다는 촉이 와서, 실종된 이후 박꽃수레의 카드를 누군가 쓴 흔적이 있고, 박꽃수레가 실종되기 전 어떤 남자에게서 편지를 많이 받은 것이 있기에, 가족들은 '그 남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박꽃수레 사건 범인

박꽃수레 범인


'그 남자'의 이름은 이성재이며, 한때 박씨의 배우자였다. 박 씨가 실종된 이후 일본인 여인과 국제결혼 후 가정을 꾸리고 있다.


실제로 미야기 현에서는 타인의 카드로 사기 행위를 했다는 한국인이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그 사기꾼이 이성재였다. 이성재는 박꽃수레의 카드를 사용하면서 오토바이 샵에 들렀었는데, 조사 결과 이 씨는 박 씨의 카드로 오토바이 보관용 창고형 상자(?) 등을 구매한 이력이 있었다. 거기다 박 씨뿐만 아니라 의문사 당한 사토 씨의 카드까지 썼다고 한다


박꽃수레의 후배 이◇◇(여)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박꽃수레가 이성재를 처음 만날 때만 해도 엄청 말렸다고 한다. 이◇◇가 척 보기에 이혼남인 것에 무서운 인상에 문신까지 했으니 뭔가 무서울만하기도 했다. 이◇◇는 박꽃수레와 이성재가 헤어졌을 때 화가 난 이 씨는 박 씨의 직장에 찾아와(?) 가전도구 등 잡동사니를 던졌다는 증언도 했다. 


이성재의 지인이라는 김○○씨의 증언으로는, 박꽃수레의 남편 사토가 사망 후 보상금을 받게 되었지만, 비자 문제로 현지 체류가 걸림돌이 되자, 이성재는 비자를 미끼로박꽃수레에게 잘해주는 척 거래하기 시작했다. 


박꽃수레 박달나무


차도 바꿔주고 그랬다. 그러나 실제 이성재의 의도는 달랐는지, 김○○의 말에 의하면, "이성재가 박꽃수레를 이용하는 것 같다. 박꽃수레는 이성재랑 같이 (다시) 산다는 꿈을 꾸고 있겠지만, 우리가 물어보면 이성재 입에선 엉뚱한 소리가 나오는 거란 말이야"라고 한다. 


일단 박꽃수레의 실종 후 카드 도용 사용 등으로 인해, 이성재는 경시청에 의해 4번 정도 체포되고 풀려나기를 반복했다. 거기에 본 사건과는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황당 사건으로 한국에서도 전과가 생겨서 강릉교도소에서 복역을 한 것도 있었다. 문제는 경시청 수사 당시, 살인 관련 증거가 없기 때문에 금전부정사용 혐의만 적용해서 4년 집행유예만 내렸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성재에 관해 보도한 일본 현지뉴스의 인터넷 판에서도 이성재는 트위터나 뉴스 댓글 등으로 사건 관련 자신의 반론을 열심히 달고 다니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중에서 이성재는 박꽃수레를 남들에게 돈을 빌려 갚지 않고 도망가는 여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다른 이성재의 주변인, 김영돈의 실종 변사사건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박꽃수레 사건을취재하는 도중, 의문의 제보자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박꽃수레가 처음이 아니다. 한두 명도 아니다 그 전에 후루카와에 있던 아무개도 없어졌다"라는 말이 있다.  


이 사건은 센다이 전문학교에서 유학하던 김영돈이 2008년 10월 실종되었고, 2010년 미야기 현 센다이시 후루카와의 한 대나무숲에서 해골 변사체가 발견되었는데, 그 변사체를 발견한 사람은 후루카와에서 죽벌업(?)을 하던 노인 이토 씨로, 처음에는 동물의 시체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사람 시체인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것이다. 신발색은 바랬고 옷은 그래도 많이 부패는 되지 않았는데 그 옷이 하필 김영돈 씨가 생전 팔당댐에서 찍었을 때 입은 옷과 일치했었다는 것이다. 


시체가 발견된 마을의 현지주민은 현지인만 알고 있을 길에 시체가 있는 거로 봐서 범인은 이쪽 지리를 잘 알고 있을 사람이라는 언질을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성재의 모친이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데 그 사업근거지가 후루카와였다.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는 부패 시간으로 추정해볼 때, 통상의 시체 부패 시간은 1년이지만, 후루카와시의 기후 특성상 부패가 더 오래 걸려서 완전히 부패하는 데에는 최소 2년 이상이 걸려서, 김영돈이 사망한 시점은 2008년일 가능성을 추론했다.


2016년에 그 변사체가 김영돈임이 확증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센다이 주재 한국영사관에서도 인지하고 있던 사건이라고 한다. 그때 김영돈의 부친이 김영돈을 찾아달라면서 영사관을 찾아왔었고 이때 증언을 해줄 주변인이라고 하필 이성재가 온 것이었다.


다시 이성재의 지인 김○○씨의 증언으로 돌아가면, 이 씨는 파칭코를 즐겨했으며 김영돈과도 금전거래가 여러 번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문에 의하면 김영돈이 급전이 필요했는데 그러자 이 씨가 돈을 후루카와에서 만나면 빌려줄 테니 후루카와를 같이 가자고 꼬드겼고, 그때 김 씨가 실종되었다 이런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다.


그때 김영돈 부친은 이성재와 면담하면서 그 내용을 녹화했는데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이성재는 시종일관 '살아있으니 걱정말라'라는 표현만 강조했다. 


거기다 김영돈을 목격한 증인이라며 한 여자를 데리고 오는데... 


그 여인은 어떻게 김 씨가 살아있는지 직접적으로 관련된 떡밥은 꺼내지 않고 '나도 조카를 잃어버렸는데 2년 만에 돌아왔다. 그 김영돈도 그런 사례일 테니 희망을 버리지 말라'라고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만 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여자는 실종 이전의 박꽃수레였다!


박꽃수레 김영돈


당시만 해도 박 씨는 이성재와 같이 지내는데, 이성재가 자기 일의 변론을 위해 마침 잘 알고 있던 박꽃수레를 내세웠던 것이다. 실제로 경찰수사에 따르면 박꽃수레 본인이 직접 "이 씨가 시켜서 내가 그렇게 진술했다. 나는 당시 김 씨를 만난 적도 없다"라고 진술해서 이게 사실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를 시행하려는 순간, 운 나쁘게도 이성재와 박꽃수레가 일본으로 돌아가버렸다는것이다. 


더 안타까운 건, 김영돈은 사후 화장되었고, 당시 변사체가 김영돈 씨라는 게 밝혀지기 이전이라 해당 변사체는 무연고자 사체 취급되어서 인근 사찰에 일본식으로 화장된 유골이 납골된 채로 있었고, 나중에 김영돈씨라는 게 밝혀지고 난 다음에도 유족은 그 무연고자 납골당에 수많은 무연고자들의 뼛가루가 뒤섞여있는(?) 식으로 납골되었다보니 어느 게 김영돈 유골인지 모르는 상황이라 유골조차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채로 돌아갔다는 슬픈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성재는 한번 황당한 뉴스로 일시적인 사회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어머니 소유의 건물과 땅을 어떻게든 강제로 상속받기 위해 멀쩡히 살아있는 어머니를 죽은 것처럼 허위로 사망 신고를 하였고 그로써 부정상속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아서 한국에서도 복역한 적이 있다. 이때 강릉교도소에 복역했는데, 여기서 문제의 박꽃수레를 향한 서신을 보내게 된다.


멀쩡한 모친 사망신고


이성재는 복역하면서 박꽃수레에게 50통 가까이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사실 이 편지에는 이 씨가 범인이라는 정황이 많이 숨겨져 있다. 


중간에 '영돈이 일은 잊어버리고'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이는 박꽃수레가 이전에 김영돈 사건을 이 씨에 의해 증언한 이벤트를 암시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박꽃수레와 김영의 연결 고리를 이성재 스스로 자백한 셈.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오윤성 교수는 아무튼 이 건으로 인해 박꽃수레는 어떻게든 김영돈 사건의 존재를 되었을 테고 이성재는 박씨가 어쩌면 김영돈 사건의 진실에 다가설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껴서 박꽃수레를 처리한 게 아니냐는 분석을 했다.


거기다 박꽃수레를 지칭하는 표현을 보면, 아예 대놓고 사랑하는 부인에게 지엄한 서방님으로부터라는 서명부터 해서 박씨를 '왼수댕이', '예쁜 구석이라고는 일편단심 밖에 없는' 같이 깔보는 표현을 쓰거나 등 박꽃수레와의 상하 관계를 암시하는 표현들이 많았다. 


게다가 내용이라는 것도 나중에 가면 자기 필요한 물건을 면회로 보내달라 이런 것들이 더 늘어난다. 잡지를 달라, 돈을 넣어달라 했는데 20만 원밖에 안 넣었다며 힐난하는 등, 사실상 박꽃수레를 이른바 셔틀에 준하는 존재로 취급한 정황도 보인다. 


박꽃수레 이성재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말미에 이성재를 취재하려고 했다. 


물론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범죄자 혹은 범죄자일 정황이 높은 이들이 그렇듯 인터뷰를 완강히 거부하려는 태도를 보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응해주려는 척 해서 의외로 어떻게 인터뷰가 진행되었는데, 오히려 자기도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도 부인에게 이혼당하고 자식들도 못 만나는 등 지쳤다면서 내 사정도 이해해달라며, 박꽃수레씨에 대해서도 박씨 아버지에게 대답한 거와 마찬가지로 왜 나를 찾느냐 나한테 이러지말고 직접 박꽃수레를 계속 찾으라는식으로 대답하였고. 살인의혹에 대해서는 증거를 갖고오라며 부정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김영돈 씨 사건에 대해서도 물어보지만 애써 부정하려 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돈이 일은 잊어버리고"가 언급된 옥중편지를 언급하자 갑자기 이성재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화를 내며 (취재진더러)당신이 경찰이냐 10년도 더 된 일을 왜 당신이 왈가왈부하느냐며 쏘아붙이고 경찰에게 무단침입자가 와서 방해하고 있다고 신고하며 취재진을 떨어트려 놓는다. 이 씨에 대한 마지막 취재는 이게 끝이었다. 




[출처 : 일본 도호쿠 한국인 연쇄 실종 변사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