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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건, 사고

교주 김기순의 아가동산 .. 그리고 신나라 레코드

교주는 김기순이라는 자로, 본래는 1978년, 전라북도 익산 의 '주현교회'라는 개신교 계열 사이비 종교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주현교회는 이교부라는 사람이 이끄는 교회로, '삭발교'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그 기이한 별칭에 걸맞게 이 주현교회에서 일어난 일도 참으로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교인들을 구타하는 것은 기본이요, 명색이 교회라는 건물 안에서 예배 도중 신도들과 함께 옷을 하나하나 벗으면서 껴안고 춤추는 나체 댄스 사건을 일으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것이다. 


이교부는 당시 "어렸을 적 다니던 교회의 목사를 본받고자 특유의 스님 같은 차림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나체 춤을 춘 것으로 물의를 빚으면서 말 그대로 개망신을 당했다. 거기에 충고하러 온 동료 목사를 폭행하는 사건을 일으킨 것이 결정적인 사유가 되어 구속되었다. 


그리고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서 지내게 되었고, 1981년, 출소 후 주현교회를 해산하였다.


아가동산의 시작 


1982년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대대리, 도리리 일대의 4,000평 정도의 땅을 구입해 '아가농장'이라는 것을 세워 신도들을 모아 아가동산이라는 종교를 만들었다. 이 때 주현교회의 해산으로 갈 곳이 없어진 이교부의 신도들까지 빼내면서 덩치를 불려나갔다. 


이런 설립 과정에서 김기순은 멀쩡히 살아 있는 이교부의 영혼을 자기가 계승했다는 주장까지 하며, 자신을 이교부의 진짜 후계자로 자처하였다. 이러한 행각은 이교부의 원한을 사게 되었고, 이교부가 출소한 후에도 과거 서로 돕고 지내던 이교부와의 사이도 원수지간이 된다. 




김기순은 "갈 곳 없는 신도들을 모아 공동체를 만들고 떡 장사, 어묵 장사, 음반 장사 등으로 땅을 샀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이 정도 장사로 어떻게 4,000평을 샀을지는..


기행과 악행 


실제로 교주 김기순은 자신을 '아가야'라고 지칭하며 꽃가마를 타고 나타나거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거나 하는 등 눈 썩을 만한 행각을 보이곤 했는데(안본 눈 삽니다) 이건 뉴스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되었다. 시각테러를 일으킬 수 있으니 보기 전에 조심하자(…). 



아가동산은 얼핏 보면 일반적인 개신교 종파 같지만, 실체는 개신교에서 예수만 빼고 그 자리에 자신을 대입한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였다. 예를 들면 찬송가에 나오는 예수 혹은 예수의 상징을 '아가' 혹은 '아가야'라는 말로 치환해서 김기순 자신을 찬송하게 만들거나 기성 종교를 무차별 비난함으로써 자신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 종교의 교리는 일단 김기순은 신이고, 3살짜리 아기이기 때문에 김기순은 어떤 말을 해도, 어떤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으며 이걸 아가야 법이라고 부르며 신나라에서는 이 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상당히 어이 없는 주장이었다. 


노동 착취와 범죄, 협업마을이라고 썼지만 절대로 자발적 협업하는 곳이 아니다.


아가농장은 전형적인 스타일의 노동착취형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농장관리, 장부관리, 의료관리, 학생관리, 세무관리 등 관리직을 놓고 철저하게 공동체 생활 및 공동작업으로 운영되어서 신도들은 낮에는 논밭에서, 밤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식으로 원치 않는(?) 투잡을 뛰었다. 물론 거기서 번 수익이 어디로 갔을지는... 


지금도 신나라네이처팜이라고 아직도 이천 도리리일대에 있다. 외부에서 파는 채소에 독이 들어있다고 신도들을 현혹시켰다. 



당연하지만 과로로 죽는 사람도 수없이 있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폭행 및 살인, 암매장을 당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재판에서 폭행과 살해 부분이 무혐의로 밝혀졌다고 하지만 피해 받은 사람들이 증언도 하였던 것으로 봐서는 정말 폭행과 살인이 없었는지는 여전히 진위가 의심스럽다.


아가동산에서 신도 3명을 살해한 것이 발각되었는데 1987년에는 7살이었던 최 모 군이 교주 김기순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주일 동안 굶기고 마구 때려서 죽게 했으며 21살이었던 강 모 씨도 교주의 아들과 사귄다며 구타당한 후 죽었고 과수원 관리 책임자였던 윤 모 씨도 교주의 말을 잘 안 듣는다며 살해당했다. 결국 이 추악한 사실이 밝혀져 핵심 간부 4명이 구속되었다.



인들에게는 1년에 딱 4번 휴가를 줬는데, 신정, 광복절, 크리스마스, 그리고 교주 생일이었다고 한다. 교주 생일에 쉬는 이유는 교주 김기순을 우상으로 하는 연극을 상연했기 때문이라고… 당연히 주말도 일한다. 


그리고 텔레비전, 신문, 외부출입, 가족면회 등 바깥소식을 접하는 건 아예 금지되었다. 가족도 김기순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유로 다 흩어놓고, 부부끼리 동침도 금지, 신도들이 데리고 간 아이들도 대부분이 중졸 정도의 학력에 병역까지 고의로 면탈하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또 김기순은 지상천국을 세운답시고 신도들의 재산 50억 원 정도를 강제로 빼앗기도 했으며 김기순의 은신처에 있는 금고에 만원권 지폐로 되어 있는 7억원의 헌금과 1996년 당시 환율로 1600만원 상당의 달러가 보관되어 있었다.



이러한 반인륜적 착취 끝에 6년만에 4,000평이었던 땅이 130,000평으로 대략 32배나 늘어나는 기적(?)을 달성하였지만... 그 악행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재판과 가벼워진 처벌


1996년 12월경 아가동산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30여명의 前 신도들이 검찰에 진정서를 내면서 그 정체가 밝혀졌다. 그리고 1997년 김기순에게는 사형을 구형했으며 나머지 간부들은 중형을 구형했다. 이때 그냥 사형을 시켰어야 하는데 그러나, 이후 조세 포탈, 횡령 등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4년, 벌금 56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무혐의 처분과 함께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신도 살해와 폭력은 무혐의로 재판 결과가 나왔으나 아직도 이에 대해 증거하는 피해자들이 적지 않았기에 이에 대해선 뭔가 의심스럽다는 평이 많다. 또한 그간 사람들을 착취하고 중노동시킨 죄과에 비해서는 너무 가벼운 처벌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며, 과거 아가동산의 노동력 착취 피해자들은 이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여하튼 김기순이 신도들의 노력을 훔쳐 세운 아가동산은 김기순이 구속되고 난 후 그 세가 약해지기 시작, 결국 와해되어 1998년 출소 후 김기순은 교주로써의 권력을 잃고 초라한 모습으로 종교계를 떠난다. 그렇게라도 인과응보격으로 쓸쓸히 살다 죽었으면 좋았겠지만…매정하게도 현실은 달랐다.


아직도 떵떵거리는 이유 : 현재도 건재한 신나라레코드


뻔뻔스럽게도 김기순은 출소 후 아직도 남 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아가동산 간판을 내리고 마지막 남은 사업체인 신나라레코드를 요긴하게 잘 운영해가며 몰래 잘 먹고 잘 살고 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과거 아가동산의 피해자들은 교주 김기순이 "그간의 악행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도 모자라 석방 후 죄값도 치르지 않고 세상을 조롱하듯 부를 누리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다. 게다가 사건 이후 인력들이 전부 떠나간 아가동산을 신나라네이쳐팜이라는 일반 개인 농장으로 바꾸고 추가로 운영하며 재정을 더욱 불리고 있다. 


원래 신나라레코드 자체가 아가동산의 계열사로 설립되었고, 아직도 운영 중이며 용산이나 센트럴 시티 등지에 지점을 갖추고 있다. 거기다가 아주 잘 나가고 있으며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음반 판매 매장이다. 참고로 여기는 아직도 아가동산 명의로 된 회사다. 


전술했듯 과거 아가동산의 교주였던 김기순은 현재도 신나라레코드의 회장으로 재임 중이며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여전히 떵떵거리며 부유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우선 아가동산의 명목상 대표 이사는 신옥희라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신옥희는 사건 당시 아가동산의 경리 담당으로 김기순의 동생 뻘 측근 중 한 명이었다고.


이 '신나라'라는건 신난다 → 신나라가 아니라 아가동산의 교리였던 '신의 나라'라는 뜻의 신(神)나라다. 신나라 미디어 홈페이지에 가면 '노래, 춤, 웃음의 나라 신나라' 라는 문구를 볼 수 있는데, 아가동산의 교리에 의하면 성부, 성자, 성령이 각 노래, 춤, 웃음이라고 한다.  


아가동산 해체 이후 이교부의 행보


참고로 앞서 구속되어 출감 이후 15년동안 밑준비를 하던 이교부는, 아가동산이 와해되자마자 '주현교부'라는 사이비 종교를 또 설립해서 아가동산 신도들을 흡수했다. 실제로 이교부는 같은 사이비 종교 교주이면서도 아가동산이 와해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탈자들을 데리고 검찰에 출두해서 증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순수한 정의를 위해서가 아닌, 김기순의 아가동산을 해산시키고 신도들을 전부 흡수하려는 치졸한 목적이었다.


이교부는 김기순과 척을 진 후 아가동산을 내분시키거나 아가동산이 자멸할 경우 신도들을 전부 끌어가기 위해 작정하고 벼르고 있던 것이었다. 


주현교부는 2010년대 들어서도 익산에서 운영되고 있긴 하는데 현대종교에 따르면 종교적인 활동은 줄어들었다고 하고, 오늘날에는 노인들이 모여서 식사하거나 친목 모임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교리가 사이비이기는 해도 지역 사회에서 크게 물의를 빚는 일이 없이 그냥 저냥 잘 운영되는듯하다. 


[출처 : 아가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