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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건, 사고

[존스타운 대학살] 사망자 918명.. 최악의 사이비 종교 인민사원의 집단자살사건

1978년 11월 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 존스 타운에서 벌어진 미국의 사회주의 목사 짐 존스가 창시한 사이비 종교 인민사원의 집단자살사건. 

아래에도 언급되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집단 자살 및 대량 살인 사건이다.


외국에서는 이 사건이 벌어진 지명(?)을 따서 '존스타운 대학살(Jonestown Massacre)' 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망: 918명 / 생존: 약 25명


사이비 종교의 등장 : 존스의 왕국 


제임스 워런 존스는 1931년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관련 서적을 읽으며 그 사상들에 심취한 존스는 인디애나폴리스의 로럴 스트리트 예배당에서 설교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목회 활동에 나섰다. 그의 주장은 인종 통합(인종차별 반대), 사회정의, 평등, 자유, 빈민구제 등의 바람직한 가치들을 함유하고 있었고 존스 자신의 카리스마도 굉장했기에 곧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후 존스는 몇 명의 신도들을 이끌고 '해방의 날개' 라는 조직을 창설한다.


존스는 체계적인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이러한 영향력 있는 행동 때문에 개방적인 개신교 교단 중 하나인 '그리스도의 제자회' 가 존스에게 목사 안수를 주고 자신들의 교파로 포함시키게 된다. 그러나 여느 사이비 종교가 그렇듯이 세력이 커지자 존스는 차츰차츰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실 라들을 비롯한 몇몇 주변 인물들은 이전부터 그의 위험성을 잘 알았다고 한다.


존스가 직접 지도한 어느 집회의 동영상


찬송으로는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설교로는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까고 있다. (...) 말이 '목사'지 사실은 기독교와는 별 상관이 없는 사회주의 선동가였음을 알 수 있다.


존스는 조직명을 '인민사원 순복음 그리스도교회(Peoples Temple Christian Church Full Gospel)'로 개명하고 70여 가구의 사람들을 캘리포니아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공산주의 사상과 초기 기독교 신도들의 사상을 따라 신도들의 소득, 부동산, 보험금 등의 자산을 사원에 바쳐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나눠 갖도록 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용납 가능한 범위였지만 신도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고, 사회에서도 이 요상한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하자 존스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1974년, 인민사원은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의 토지를 구입했고, 아예 미국을 떠나 그곳에 마을을 꾸리고 정착했다. 이 '존스 타운'이란 자신만의 왕국에서 짐 존스는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는 미국 사회와 기독교를 공공연하게 '자본주의 제국주의'라 비난하고 신도들을 선동하며 스스로를 신격화했다. 그리고 김일성(...)과 이오시프 스탈린, 로버트 무가베(단, 이때는 짐바브웨의 독립운동가로서)를 반대급부로 띄워줬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신도 통제에서 북한과 마오이즘을 상당히 참고했다고 한다. 


신도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마을 밖으로 나가면 독사와 원주민들 때문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무장 경비병들을 마을 근처에 세우고 감시를 시키기까지 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서 농작물이나 다른 작업에 대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조금이라도 불만을 품을시 가차없이 구타와 정신적 학대를 했다고 한다. 


신도들, 심지어 가족들 사이에서도 서로 감시하며 존스타운에 대한 적대적 자세가 보이면 짐 존스와 간부들에게 보고를 했단다. 레슬리 윌슨이 인터뷰에서 본인은 감시체제로 인해 당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부모와 형제들에게도 밝힐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윌슨은 사건 당일 충성파 신도였던 남편에게 피크닉을 할 것 이라며 속이고, 자신의 2살 배기 아들과 탈출하려는 마음이 맞은 신도 2명과 함께 경비들을 피해 정글로 도망쳐 탈출하며 생존할수 있었다. 하지만 집단 대학살로 인해 윌슨 본인의 남편과 부모, 형제, 조카들을 잃고 말았다.


결국 존스 타운에 갇혀있는 신도들의 안전을 염려한 미국 본토 가족들의 항의로 캘리포니아 출신 리오 라이언 하원의원이 진상조사를 위해 가이아나로 떠났다. 그러나 이 방문은 존스 타운의 사람들을 해방시키기는 커녕 끔찍한 결말을 부르고 말았다.


리오 라이언 의원과 조사단들은 존스타운을 방문하며 신도들이 평소 좋게 지내는줄 알고 있었지만 버논 고스니라는 신도가 존스타운의 실상을 적은 쪽지를 짐 존스와 그의 하수인들이 보는 시선을 피해 조사단원인 NBC 기자 돈 해리스에게 전달하고 라이언 의원과 조사단들도 실상을 알게 되었다. 



조사단이 조사를 하러 온 가운데 한명이 "존스타운에서 빠져나가게 해달라."라고 말했고, 이후 조사단원이던 NBC 기자 돈 해리스가 신도들을 영상 인터뷰를 했는데 대부분의 신도들은 존스타운에 대해 행복하다, 살기 좋다는 말만 하지만 표정을 보면 존스의 보복이 있을까봐 불안해하는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패트리샤 파크스라는 신도가 조사단원이던 라이언 의원의 법률고문이던 재키 스피어에게 가족들과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했고, 이후 돌아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사람이 늘어나게 되며, 인민사원 내부에서 발칵뒤집히기 시작하게 되었고 교주인 존스와 간부들은 당혹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귀국의사를 밝힌 15명의 신도들과 면담을 하고, 미국으로 보내주기로 결정하면서 15명이 조사단을 따라 존스타운을 빠져나가기로 되어있었다.


사원 내부의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던 돈 해리스가 급히 짐 존스에게 실상이 적힌 쪽지를 보여주며 묻자, 심각한 표정이던 존스가 쪽지에 적힌 글은 거짓말이라며 제발 여기에서 당장 나가라는 말을 하였다. 


라이언 의원이 존스에게 가서 신도들이 떠나려고 한다며 단도직입적으로 인민사원의 문제점을 말하려고 하자, 그때 돈 슬라이라는 신도가 뒤에서 라이언의 목을 잡고 칼로 찌르려고 했지만 존스의 변호사 2명이 흉기를 빼앗아 저지하며 라이언 의원은 셔츠에 피가 많이 묻어있지만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1978년 11월 18일, 존스는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려 하는 조사단과 신도들을 살해하려고 비행기 이륙장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보냈다.


그 자신을 포함하여 총 909명 신도들이 청산가리를 탄 쿨에이드 음료를 마시고 집단음독자살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순순히 존스의 말에 따라 그 자식들에게 독을 먹인 다음 자기들도 마셨다. 존스 교주 역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는데, 그가 자살했는지 아니면 함께 숨진 채 발견된 교단 간부에 의해 살해됐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조지타운에 있는 인민사원 지부에서도 신도 4명이 사망한채로 발견되었다. 


이 와중에서도 생존한 사람이 몇 있다. 



사건 당일 이륙장을 통해 귀국하려는 15명의 신도들과 다르게 앞서 11명의 또 다른 신도들이 교주인 존스와 간부들이 라이언 의원과 조사단들에게 신경이 쓰인 틈에 몰래 정글로 도망치며 탈출해서 생존하였고, 존스타운에서 일하던 변호사 두 명은 사건 직전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짐 존스에게 허락을 받고 존스타운을 빠져나왔다. 


무장 경비가 이들을 뒤쫓았지만 정글에 숨었다가 가이아나의 수도 조지타운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짐 존스는 사건 직전에 존스타운에서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가방 두 개에 나눠 담고 조지타운에 있는 소련 대사관으로 가져다 주라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이를 수행한 남자 세 명은 살아남았다. 


이 외에도 귀가 안 들려서 모이라는 소리를 못 들었다가 나중에 수로에 몸을 숨겨서 살아남은 사람 한 명, 모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침대 밑에 숨은 사람 한 명, 모였다가 경비를 속이고 탈출한 사람 한 명, 역시 모였다가 청진기를 가져오겠다고 하고는 숨은 사람 한 명이 있다. 


또 5살짜리 어린이도 하나 있었는데, 숲속에 숨어있다가 가이아나 정부 쪽 사람들한테 구조되었다. 이 어린이는 나중에 미국으로 돌아가서 입양되어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한편 짐 존스의 아들은 당시 농구 경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출장갔기에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다. 또다른 아들인 스티븐 존스도 조지타운에 있어서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다. 다른 자식들과 존스의 아내도 이 사건으로 짐 존스와 존스타운에 남은 다른신도들과 함께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사건 직후 가이아나군이 출동하여 시신들을 모두 수습하였다. 그 뒤 지금까지도 존스타운의 철거나 재개발 등 소식은 일절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고, 오늘날까지도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사이비 종교의 대표적인 예로 자리잡고 있다. 


사건의 원인에 대해 여러가지 상충하는 견해들을 담은 책과 기사들이 지금까지도 발표되고 있으며 종교학, 심리학, 철학, 범죄학 등 각종 학문에서도 이 사건을 메인 테마로 다룬 적이 있다. 공산주의와 크게 연계되었기 때문에 종교, 정치적으로도 주요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Discovery에서도 다큐멘터리로 나온 적이 있는데 여기선 인민사원에서 탈출하려 하던 신도, 자살한 신도의 가족, 그리고 짐 존스의 아들이 증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자살사건 이라고 불리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는데, 인민사원 신도였던 오델 로즈의 증언에 의하면 짐 존스는 신도들을 모아놓고 강제로 자살할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또한 이 사건과 관련해서 세간에 퍼져 있는 '신도들이 나란히 줄을 서서 독극물을 받아먹고 아무 저항 없이 죽어갔다' 는 인식 또한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그 당시 신도들 주위에는 무장 경비원들이 배치되어있었기에 섣불리 저항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로즈는 어린이들에게 강제로 독극물을 먹이는 모습도 실제로 가까이에서 목격했다고 한다. 


로즈는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청진기를 가지고 오겠다며 빠져나오면서 몰래 도망가서 살아남을수 있었다. 로즈를 포함한 생존자들의 증언에는 깜깜한 새벽에 사이렌을 울리며 존스가 화이트 나이트라고 방송하며, 신도들을 모이게 하고 외부세력이 인민사원의 신도들과 존스 자신을 위협하려고 한다는 가정하에 자신을 따르는지를 확인하려고 자살연습을 한것이 수차례 있었다고 한다.


집단자살이 이루어지는 동안 신도들이 마지막 간증을 남기며 녹음한 테이프. 세뇌되어 서로 죽음을 격려하며 박수를 쳐대는 부모들, 사이비 사상에 홀린 부모때문에 약물을 주입당하여 고통속에 최후를 맞는 아이들의 비명소리, 그리고 배경에 흐르는 음악이 뒤섞여 매우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신도들이 강요로 인해 독극물을 마신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자살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존스타운 주민 중 3분의 1이 16살 아래 어린이였다.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존스는 제일 먼저 부모들더러 자식에게 독극물을 먹이라고 명령했다. 뒷걸음질치는 어린이들을 붙잡은 사원 임원들이 물딱총으로 독극물을 먹였고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고통에 울부짖는 와중에 집단자살을 합리화하는 연설을 해대면서 서로 박수를 쳤다. 이 과정이 하나도 남김없이 녹음 테이프로 남아있다.



그러나 위 테이프를 청취하면 알 수 있듯 당시 모임에서 짐 존스의 자살 명령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건 크리스틴이라는 여성 한 명에 불과하고, 이 크리스틴은 "자살하기 무서운 건 아니다"며 짐 존스와 그의 결정에 대한 충성은 아예 전제로 깔아놓으며 다만 '아이들은 살려주자', '생명권은 각자 자신에게 있으니 자살 또한 각자에 맡겨야 한다'는 정도의 상식적인 반론을 하는 정도이다. 


이때 짐 존스는 '이 파시스트 세상에 아이들을 남겨 고통받게 할 수는 없다'는 등의 염세적인 비관론으로 크리스틴의 말문을 막아버렸고, 다른 충성파 신도들은 이 여성을 겁쟁이라며 비판해서 묵살시켰다. 


또 짐 존스가 라이언 의원이 죽었다는 발표를 하자 신도들이 박수를 치는 소리까지 나온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총을 든 경비병들이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은 사실로 보이나, 또 많은 신도들이 순순히 독극물을 받아 마신 것도 허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자살자들이 남긴 유언이나 메모에서 이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짐 존스에 대한 믿음을 유지 한 것을 알 수 있다.



워낙 괴이한 사건이다보니 당연히 음모론이 등장하는데 존스는 미국 정부의 의뢰로 집단 최면 실험을 하고 있었으며 캘리포니아나 가이아나에 정착하는 비용 등이 전부 미국의 비밀 자금의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미 하원 조사단의 방문으로 이런 사실이 드러나게 되자 존스와 미국 정부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조사단을 살해하고 피실험자인 신도들을 집단 자살시켰으며 이러한 일은 존스를 지원하기 위해 남미에 주둔하고 있었던 그린베레 요원들이 수행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국에서는 80년대에 이와 비슷한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Psychic TV의 노래 중 'White Nights' 는 가사를 모르고 들으면 매우 행복하게 들리지만, 인민사원 집단자살사건에 관한 노래다. 참고로 존스타운에서 자살 예행연습이 수시로 이뤄졌다고 하는데, 그 모의 행사 이름이 백야였다고 한다.


꽤나 유명한 학살사건이기 때문인지 서구 쪽의 만화 대부분에서 가공의 사이비 종교 소재로 잘 쓰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심슨가족에 나오는 무브먼트교도 이들과 교리가 비슷하다. 


2017년 4월 25일에 출시된 게임 아웃라스트 2는 여기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제작자가 밝혔다. 2017년 초에 출시 예정인 게임 The Church in the Darkness 역시 이 사건을 모티브로 발표됐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쿨에이드를 마시다(Drink the Kool-Aid)' 가 북미에선 "무언가를 심각할정도로 믿다" 는 은어가 되었다. 또 사이비 종교 집단의 집단 자살을 빗대어 표현할 때도 쓰인다.


[출처 : 인민사원 집단자살사건]